전국노래자랑 예심 참가후기(ft. 방송국 마이크 성능에 반하다)
오래전에 참가했던 전국노래자랑 예심에 참가 후기를 글로 남겨 추억을 반추해 보려 한다. 강원도 모도시에 근무하고 있을 당시에 전국노래자랑이 그 도시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때마침 근무를 하고 있던 곳과 전국노래자랑 예심이 있었던 지역 방송국과의 거리도 가까워 미리 휴가를 내어 현장에서 접수를 하고 예심을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엔 현역 군인신분이어서 사전에 본부에 보고를 하고 방송에 출연하려면 참모총장의 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민간인 신분보다는 비교적 까다로운 허가절차 때문에 결국 민간인이 된 다음에 전국노래자랑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사실 전국노래자랑은 1차 예심과 2차 예심을 모두 통과해야만 최종적으로 본방송에 출연을 할 수가 있다. 예심 통과도 하기 전 방송 출연 허가를 미리 고심하는 어이없는 김칫국 한 사발을 먼저 들이키는 상상을 했던 것이었다.
우연히 점심을 먹기위해 들렀던 중국집에서 전국노래자랑 예심 참가 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중국집 사장님 조카가 예심에 참가했던 후기를 가족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예심 통과의 방법은 노래실력은 물론이거니와 결정적인 개인기 한방이 필요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시간이 흘러 군을 전역한 이후에 우리 동네에도 전국노래자랑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지를 보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사전접수를 하였고, 얼마지나지 않아 KBS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은 개그맨 이수근의 복귀 예정 프로그램에서 전국노래자랑 출연 예정자를 취재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거기에 출연하면 1차 예심을 면제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좋은 제안을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단박에 거절을 하였다. 사실 1차, 2차 예심 경쟁은 굉장히 치열했다.
예심참가 인원만 해도 근 500명이 넘었다. 그중에서 최종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은 고작 10명~15명 내외였다. 사실상 경쟁률은 수십대 일 수준이었다.
미리 사전접수한 덕분에 50번대 이하의 접수번호를 받아 그나마 빨리 예심을 볼 수 있었다. 예심 장소에 도착해보니 어마어마한 참가자가 벌써부터 진을 치고 있었다.
단체팀들은 의상과 분장부터 눈에 띄고 화려했으며 해당 지역 주민들 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예심을 보러 온 참가자들이 은근히 많이 있었다.
전국노래자랑 1차 예심은 무반주로 진행되고 2차 예심을 반주와 본인의 개인기 어필로 최종 참가자를 결정하게 된다.
예심전에 전국노래자랑 작가분이 예심 참가자 주의사항과 예심을 통과할 수 있는 일종의 꿀팁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우선 음악 선정 시 가급적 슬픈 노래를 삼가라는 내용이다.
전 국민이 함께 즐기는 노래자랑 프로그램의 성격과 취지에 부합에 가급적 밝고 신나는 노래로 음악을 선정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리고 무대를 넓게 넓게 쓰고 노래를 가만히 서서만 부르지 말고 이동하면서 율동이나 동작을 크게 하라는 주문이었다.
담당 작가분이 슬픈 노래는 가급적 선곡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첫 예심 참가자의 곡명은 임재범의 고해였다.
적잖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져버려서 덕분에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고해의 클라이맥스 파트까지는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는데 어찌합니까? 몇 마디 부른 후에 심사위원 왈 이거 정말 어찌합니까? 제가 슬픈 노래 가급적 부르지 말라고 말씀드렸는데... 수고하셨습니다.
심사위원에게 수고하셨습니다를 들으면 곧바로 탈락이었다. 어느정도 노래실력도 있으면서 임팩트 있는 개인기까지 있으면 1차 예심은 무난하게 통과하는 분위기였다.
노래실력이 조금 애매해도 무대를 조금 넓게 쓰면서 율동과 동작을 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능숙한 무대매너를 선보이고 관객호응도가 좋으면 1차 예심은 비교적 쉽게 통과하는 분위기였다.
필자의 바로 앞에 참가자분은 60~70대로 보이는 어느 여성분이었는데 머리에 물동이, 물항아리를 올리고 노래를 불러 1차 예심을 통과하였다. 노래실력은 조금 애매하셨는데 물항아리 뿐만 아니라 어떤 물건을 머리에 올릴 수 있다는 매력 어필이 큰 점수를 얻어서였는지 1차 예심을 쉽게 통과하였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참가서에 노래 곡명을 3곡까지 적을 수 있었는데 나는 3곡 모두 박상철의 '무조건'을 기록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하고야 말았다. 반드시 3곡 모두 다른 곡을 써야 조금이라도 예심 통과를 위한 매력 어필을 할 수가 있다.
박상철의 무조건을 첫소절부터 부르는 것보다 클라이막스 바로 직전부터 부르는 것이 매력 어필에 조금이나마 유리할 것이라는 스스로의 데이터 없는 분석과 판단 아래 방송국 무선마이크를 잡자마자 가사를 읊조렸다.
탄성을 지르지는 못했지만 와...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방송국 마이크의 성능이 굉장히 좋았다. 고음을 팍팍 내질러도 마이크가 잘 받아줄 정도로 마이크 성능이 시원시원했다. 체감상 거진 노래방 마이크 성능의 100배 이상은 좋았다.
방송국 마이크의 엄청난 성능에 잠시 도취가 된 나머지 다음 소절로 건너뛰어야하는데 끝마디를 너무 오랫동안 바이브레이션 스킬로 부여잡고 있었다. 다음 소절인 태평양을 얼른 건너야 했었는데... 결국 아쉽게 태평양을 건너질 못했다. 결과는 수고하셨습니다였다.
생각지도 못한 마이크의 엄청난 성능에 도취된 나머지 무대도 넓게 쓰고 동작도 크게하자는 스스로의 다짐을 망각한 채로 그냥 노래만을 불렀다.
예심에 탈락하면 무대뒤에서 진행요원이 신인가수나 무명가수들의 음반을 몇 개씩 기념으로 챙겨준다. 이날의 예심은 참가자가 많아서 무려 새벽 12시까지 진행되었다고 한다.
예심 참가 후에 후기를 같은 배드민턴 동호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몇 년 전에 예심을 본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그 친구 역시 예심에서 탈락했지만 예심 통과의 핵심은 노래 이외의 개인기 장착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예심통과를 위한 임팩트 있는 몇 가지 나름의 개인기가 장착되었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전국노래자랑은 아직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되고 전국노래자랑 예심에 참가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참고로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는 경험상 상당히 성능이 좋으니 노래를 잘하시거나 여타 개인기가 많으신 분은 경험 삼아 적극 참가해보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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